🪐 오롯플래닛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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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이 끝나면, 공연을 그냥 보러 갈 수 있을까요?



긴긴밤이 끝나면, 공연을 그냥 보러 갈 수 있을까요?

소리가 눈으로 들리는 것 같아요

3월의 마지막 주말, 대학로에서 작은 단체관람 행사가 열렸습니다.
청각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모여 뮤지컬 <긴긴밤> 을 함께 관람했습니다.
망고북스와 유니스텝이 함께 기획한 자리였습니다.

같은 시간에, 함께

오롯플래닛은 8년 전, 한국 영화에 한글 자막을 제작하는 동아리로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도 청각장애인 중에 한국 영화를 보지 않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막이 없으니 처음부터 선택지에서 빠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이번 관람 행사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한국 영화는 자막이 없어서 외화만 본다고 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가족끼리 보러 가자고 할 때도
엄마의 머릿속에는 “그럼 우리 딸은 어떡하지?”가 먼저 떠올랐다고 합니다.
1500만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자막 버전은 한 두달 뒤에 개봉되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개봉 시기가 빨라졌지만 여전히 일부 상영관과 시간대에 자막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유니스텝은 공연장에 오퍼레이터를 직접 배치해 실시간으로 자막을 송출합니다.
녹화된 영상이 아니라, 배우가 무대에 서는 바로 그 순간에 자막이 함께 흐릅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면을 함께 보는 것.
그것이 유니스텝이 라이브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좋아지고 있냐고 물으면

관람 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한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된 날부터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던 시간들이 제 인생의 긴긴밤이었어요. 그 밤이 지난 뒤에도 길든 짧든 밤은 계속 되었고 여전히 넘어야 할 편견들이 여전히 많아요.
"청각장애인이 무슨 공연을 봐?"라는 말에 아직도 충격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도 있지만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더 크거든요. 가족들과 다같이 영화를 보고 웃고 울 수 있는 기회. 별것 아니지만.. 이런 자막 서비스가 그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더라고요.
넷플릭스에는 자막이 있고, 유튜브에는 자동 자막이 붙습니다.
기술은 분명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한국 영화에 자막이 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공연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리어프리 자막이 제공되는 공연은 전체 공연 중 극히 일부입니다.
편리해진 것들은 많아졌지만, 누구나 당연하게 누려야 할 것들이 아직 선택지로 남아 있습니다.

긴긴밤은 계속되지만

공연이 끝나고 아이에게 어땠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소리가 눈으로 들리는 것 같아요. 자막을 실시간으로 보니까 더 이해가 잘되었어요. 자막이 있으면 다른 뮤지컬도 보러 가고 싶어요.
ⓒ출처 망고북스
유니스텝이 만들고 싶은 것은 이 경험이 특별한 날의 기억으로 남지 않는 세상입니다.
보고 싶은 공연이 생겼을 때 자막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개막 첫날 가족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연를 볼 수 있는 것.
자막 한 줄이 그 문을 여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