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원정대 ep1. 러닝타임 이후의 이야기들
2025.10.26
자막을 제공하면 청각장애인 관객이 올 줄 알았다.
자막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외국인 관객들은 점점 늘어났지만
청각장애인 관객은 눈에 띄게 늘지 않았습니다.
분명 좋은 공연이고, 자막도 잘 작동하는데… 왜 오지 않을까?
하지만 곧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자막이 제공된 적 없던 공간에서,
갑자기 자막을 제공한다고 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올리는 없다는 것을.
자막은 보조도구일 뿐이지, 자막을 위해 공연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막은 정보이지만, 그 전에 ‘신뢰’와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한 번의 시도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취향은 나눠야 생긴다
함께 보는 문화, 함께 즐기는 구조 속에서 문화는 자랍니다.
관람도,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취향은 그렇게 다른 사람과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곤 합니다.
뮤지컬 역시 어느 순간 갑자기 대중문화가 된 게 아닐 겁니다.
공연을 알리고, 관람 문화를 만들고, 입소문이 돌고,
친구를 따라가며, 친구가 보낸 영상을 보며 조금씩 대중 속에 자리를 잡았죠.
혼자서도 좋지만, 같이 볼 사람이 있다는 건
곧 시도해볼 용기가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취향원정대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보고 싶은 공연 중 자막이 있는 것’을 찾고 싶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에게 공연은 어떤 문화였을까요?
대부분은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문화’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자막,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두 번의 ‘배리어프리 공연’만으로 그 오랜 거리감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배리어프리로 시도되는 공연들은 대중적 인지도는 낮거나
입문자에겐 어려운 공연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인 관객들은 그동안 ‘모니터링’,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려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공연을 ‘선호’에 따라 고르기보단,
그냥 볼 수 있으면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러닝타임을 벗어난 시도를 했습니다.
그저 “자막을 제공합니다”가 아니라,
“이 자막을 통해 당신의 취향을 찾아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자막은 관람의 도구에서 머무르지 않고 경험의 기반이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취향원정대>로
같이 공연을 보고, 나누고,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단순히 자막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즐기고,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고자 했어요.
장애 여부나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
관람의 경험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연결된 사람들.
그 속에서 우리는 자막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대화들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