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도 피곤한데 세상까지 바꿔야 해? │ 황운주
2025.08.10
사는 것도 피곤한데 세상까지 바꿔야 해?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눈앞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가만히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불편한 걸 그냥 두지?’라는 의문이 들 때면,
그냥 내가 직접 해버릴까? 싶은 생각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대학 시절, 배리어프리 자막 동아리 ‘오롯’에 들어간 이유도 그랬습니다.
‘타자만 칠 수 있으면 자막을 만들 수 있다’는데 왜 아무도 안 하지?
자막이 없어서 영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지금 있는 기술로 만들어서 전달하면 되지 않을까?
그게 가장 빠르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니스텝도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거창한 비전보다, 지금 가능한 최선을 실행하는 것에서 출발한 일이
어느새 많은 사람들과 만나, 함께 걸어가는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기술은 있는데, 왜 지속되지 못했을까
‘자막’이라는 도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공연 분야에서도 공공/민간 영역에서 도입한 사례가 여러차례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운영된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최첨단 AI 기술이 아니라,
공연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며 그 순간에 맞는 자막을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몇년 전, 오롯을 통해 만난 공연 현장들은
수많은 문제점과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습니다.
공연에서 자막을 제공하는 방법은 마땅한 시스템이나 서비스가 없는 단계여서
대부분 PPT로 1천장이 넘는 자막을 한장씩 넘겨야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간소화하고, 프로그램으로 쉽게 제작·관리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더 많은 곳에서 자막을 찾고, 쉽게 도입할테니까요.
저는 이런 빈틈을 하나씩 찾아내고, 메워 가는 일을 해왔습니다.
막상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 낸 후에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이 발굴되는 순간들이었죠.
자막 기기의 빛이 공연 몰입을 방해한다는 우려,
처음 도입하는 기술에 대한 거부감 등이 존재하기에
공연장에 자막을 도입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술과 기술 주변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벌써 수많은 공연에 자막이 도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기술의 조각을 이어 붙이며
세상에는 이미 훌륭한 기술과 산업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기술의 분야들은
쉽게 연결되지 않아, 여전히 빈틈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기보다,
현재 존재하는 기술과 시스템을 잘 이어 붙이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모든 문제에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야한다면,
정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퍼즐 조각 같은 기술들을 모으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렇게 연결된 기술은 사람들의 접근 경로를 넓히고,
선택지를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지금 가능한 최선의 해법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목적을 찾고 적용할 때, 더 많은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기술들을 찾아내고 구조화해서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최선의 해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빠른 실행과 최선의 결정들이 쌓이면,
어떻게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길이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일테니까요.